전남 최초의 본당,

한국 교회의 살아있는 역사


1897년 5월 8일, 드예 신부(Albert Victor Deshayes, 파리외방전교회)가 전라남도 최초의 본당인 목포본당(현 산정동성당)을 설립하였습니다. 1896년 위텔 주교의 전라도 순방을 계기로 파견이 결정된 드예 신부는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 불과 3년 만에 1,200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며 목포·서남 지역 선교의 거점으로 성지를 성장시켰습니다.


1937년, 대구대목구로부터 분리된 광주지목구가 설정되면서 임오웬 몬시뇰(Owen McPolin,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이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바로 이곳에 첫 교구청을 건립하였습니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 성지는 광주대교구 신앙의 모태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패트릭 브레넌 지목구장, 토마스 쿠삭 신부, 존 오브라이언 신부, 그리고 신학생 전기수 그레고리오와 고광규 베드로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신자들 곁에 남아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이들 다섯 분은 현재 81위 신앙의 증인으로 시복 청원 중에 있습니다. 1953년 5월 31일, 하롤드 헨리 대주교와 토마스 모란 신부의 주도 아래 산정동본당과 경동본당 신자들과 함께 세 개의 쁘레시디움을 설립하고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까떼나를 바쳤습니다. 이로써 목포성지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발상지가 되었습니다.


2021년 5월 10일, 교황청은 이 성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 십자가 현양 대성전'의 칭호를 수여하였습니다.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교황청 직속 바실리카로서, 이 성전은 이제 전대사의 특전이 부여된 거룩한 순례지로 세계 교회와 연결됩니다. 



주요 연혁

1897전남 최초 본당 설립 (드예 신부 초대 주임)
1937
광주교구 설정 · 초대 교구청 건립 (임오웬 몬시뇰) 
1950
한국전쟁 중 다섯 순교자 희생 (시복 청원 중)  
1953
한국 레지오 마리애 최초 설립
2021
교황청 바실리카 승인 — 한국 유일



전남 최초의 본당,

한국 교회의 살아있는 역사 


1897년 5월 8일, 드예 신부(Albert Victor Deshayes, 파리외방전교회)가 전라남도 최초의 본당인 목포본당(현 산정동성당)을 설립하였습니다. 1896년 위텔 주교의 전라도 순방을 계기로 파견이 결정된 드예 신부는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 불과 3년 만에 1,200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며 목포·서남 지역 선교의 거점으로 성지를 성장시켰습니다.


1937년, 대구대목구로부터 분리된 광주지목구가 설정되면서 임오웬 몬시뇰(Owen McPolin,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이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바로 이곳에 첫 교구청을 건립하였습니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 성지는 광주대교구 신앙의 모태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패트릭 브레넌 지목구장, 토마스 쿠삭 신부, 존 오브라이언 신부, 그리고 신학생 전기수 그레고리오와 고광규 베드로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신자들 곁에 남아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이들 다섯 분은 현재 81위 신앙의 증인으로 시복 청원 중에 있습니다. 1953년 5월 31일, 하롤드 헨리 대주교와 토마스 모란 신부의 주도 아래 산정동본당과 경동본당 신자들과 함께 세 개의 쁘레시디움을 설립하고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까떼나를 바쳤습니다. 이로써 목포성지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발상지가 되었습니다.


2021년 5월 10일, 교황청은 이 성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 십자가 현양 대성전'의 칭호를 수여하였습니다.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교황청 직속 바실리카로서, 이 성전은 이제 전대사의 특전이 부여된 거룩한 순례지로 세계 교회와 연결됩니다. 


주요 연혁

1897전남 최초 본당 설립 (드예 신부 초대 주임)
1937광주교구 설정 · 초대 교구청 건립
(임오웬 몬시뇰) 
1950한국전쟁 중 다섯 순교자 희생 (시복 청원 중)  
1953한국 레지오 마리애 최초 설립
2021교황청 바실리카 승인 — 한국 유일